월봉첩 초계문 신운곡 이희발 월급명세서 김순미(한국국학진흥원 선임연구원)
운곡 이희발 영정 ⓒ국립중앙박물관
운곡 이·히 바루는 1768년 1월 16일 허청(현 울산)의 화산화 산외가에서 태어났고 1850년 자신의 생일인 1월 16일 의 성에서 사망했다.그는 23세로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28세(1795년)에 생화 문과에 급제하고 규장각의 첫 히로후미 신하가 되었다.학문을 즐김 군주 정조는 19년(1781~1800)동안 총 10차례에 걸친 초계 문신을 선발했는데, 마지막 기수는 1800년 4월 선발하고 정조는 1800년 6월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교육이 지속하지 못 했다.그러므로 제9차로 선발된 운곡을 포함 30명의 초계 문신이 정조부터 마지막에 교육을 받았다.당시는 초계 문신에 선임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운곡의 문집에 실린 시”억구 놀”에는 초계 문신 시대를 가장 아름다운 젊은 날이었다고 회상한다.초계 문신의 생활 초계 문신의 선발 자격은 37세 이하에서 과거에 급제하다만 문신이나 현직으로 활동해도 정규 네 품 이하의 중하위 관료가 아니면 안 됬다.정조가 이런 자격 조건을 내세운 것은 과거 시험만을 공부한 급제자들이 관직에 나갔을 때 관리로서 업무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급제 이후에는 공부하지 못하는 세태 때문이었다.이에 대한 정조는 그들을 재교육하며 문 바람을 진흥시키는 업무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초계 문신(조 겜은싱)의 교육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매달 구술 시험인 강경과 필기 시험인 제술에서 실력을 평가하고 연소한 문신은 전자 글씨로 매월 일일에·전서 등을 시험해야 했다.또 활을 쏘다 시험 발사도 하고 상벌을 주었다.운곡은 당시의 생활을 “아침 가면 날이 저물어 밤에 물러나면 새벽이 됐다.”라고 썼으니, 오늘의 고시생들의 하루 일과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희발, 『초계봉사』, 영천 이씨 의성 운곡 문중 기탁 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초계 문신의 월봉 대신 초계 문신에 선발되면 본래 직무를 면제하고 오로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면을 보장했으나 상벌도 함께 시행하기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주었다.운곡이 죽자 손자가 할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초계 문신 때 받은 월봉 단자를 모아”『 초계 봉사 』”이라고 제목 하고 첩을 만들었다.그 내용을 보면 봄에는 “우오”로 불리는 “우이오”,”준 지”로 불리는 “시아우오”,”밴댕이[소어], 가을에는 ” 살아 있는 게[삶의 꿩], 겨울에는 “삶의 꿩(삶의 꿩)”,”곶감(곶감)”산 귤 나무와 숯 등 제철에 나오는 산물과 필요한 물품을 지급했다.특히 겨울에 담뱃대와 담배를 지급했다는 점이 흥미롭다.추운데 방에서 독서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중요하게 사용된 것이다.동시에 그들에게 계절과 관계 없이 상비약을 지급하고 있는데 우황 청심원·하늘 금광제 고리·입효제 중단·납약 등이다.납약 3종은 내 진료실에서 만든 청심환·안심 마루·소합 말 등을 말하는데 일명”만병 해독단”으로 불렸다.납약 3종을 지급한 하선장에는 예외 없이”수유 하직”혹은”수유 하거”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휴가로 고향에 돌아가는 길의 놀이 기구를 갖추고 구급 약으로 지급한 것이다.그러나 자료의 방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물품은 매달 지급된 것은 아니다, 부정기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보인다.
이희발, 『초계봉사』, 영천 이씨 의성 운곡 문중 기탁 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운곡 길로 절에 들어가길로 절의 정식 명칭은 “치사 기로소”이다.줄여서”키로사”,”키로소”,”키로소”등이라고 부른다.시작은 태조 가·성게가 60세로 기도사에 들어서다, 이후 문신 중 70세 이상의 관원이 참여하여 특정 직무 없이 일정한 회합 장소로 이용했다.조선 중기 이후는 기도사에 들어갈 자격에 제한을 마련, 정이품 판서급에서 70세 이상의 문신이 아니면 되지 않았다.군신이 함께 참여하는 계기 노사의 특성상 조정 관청 서열이 계기)노사가 최고를 차지하는 그들은 중요한 국사 논의에 참여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기도 했다.그러므로 조선 시대 관리들은 갈림길에 서는 것을 개인뿐 아니라 가문과 해도 손색없는 영예로 생각했다.이·히 바루는 80세가 된 1847년에 집 의대 남편에 올랐고 6월에 병조 참판에 임명됐다.이·히 바루는 고령을 이유로 사직원을 올리고 당시의 폐해를 지적했다.이에 헌종은 “이 사람은 정조 때의 시종 신하로 이같이 진술하고 권면하면 매우 감탄한다.”이라며 특히 자헌 대부로 승진시켰고 단망에서 지중 가을 부사에 임명하고 갈림길 절에 가도록 명령을 내리다.
운곡, 길로사에 들어가는 길로사의 정식 명칭은 ‘치사기로소’이다. 줄여서 킬로사 킬로소 킬로소 등으로 부른다. 시작은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기도사로 들어가면서부터이며, 이후 문신 중 70세 이상의 관원이 참여하여 특정 직무 없이 일정한 모임 장소로 이용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기도사에 들어갈 자격에 제한을 두어 정2품 판서급으로 70세 이상의 문신이어야 했다. 군신이 함께 참여하는 기로사의 특성상 조정 관청 서열에서는 기로사가 최고를 차지하였고, 이들은 중요한 국사 논의에 참여하여 왕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선시대 관리들은 기로에 서는 것을 개인뿐만 아니라 가문으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영예로 여겼다. 이희발은 80세가 되던 1847년 가의대 남편에 올랐고, 6월 병조참판에 임명되었다. 이희발은 고령을 이유로 사직서를 올리며 당시 폐해에 대해 지적했다. 이에 헌종은 “이 사람은 정조 때의 시종신하로서 이렇게 진술하고 권면하니 매우 감탄한다.”면서 특히 자헌대부로 승진시키고 단망으로 지중추부사에 임명하여 기로사에 들어가도록 명을 내린다.
이희발,<기사월봉첩>,영천이씨의성운곡문중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한 사람의 월봉문서가 이렇게 첩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한 사람이 초계문신과 기로에 서 그 월봉첩이 남아 있는 경우는 더욱 드문 일이다. 이 자료는 조선경제사 연구의 토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계 문신과 기로에 선 노신들의 월봉 비교와 그들에 대한 예우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한국국학진흥원 정보지 예당길59호(2023년 봄호)에 수록된 원고를 재정리하여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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